폭스바겐 구조조정 이유는 단순한 몸집 줄이기가 아니다. 지난 3일 감독이사회가 만장일치로 승인한 '퓨처 플랜 2030'은 5만 명 추가 감원과 함께, 그렇게 마련한 실탄을 중국과 미국에 쏟아붓겠다는 계획을 담고 있다.
5만 명 자른 이유는 따로 있다
감독이사회는 지난 3일 '퓨처 플랜 2030'을 만장일치로 승인했다. 2035년까지 생산 모델 수를 절반으로 줄이고, 사양·옵션 조합도 75% 축소한다는 내용이다. 여기에 5만 명 규모의 추가 감원까지 포함됐다.
폭스바겐의 대규모 구조조정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이미 여러 차례 예고돼 온 수순이라, 이번 확정 소식 자체보다 '왜 지금, 이 정도 규모로'가 더 중요한 질문이다.
표면적으로는 후퇴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감원으로 마련한 재원을 특정 두 곳에 몰아넣기 위한 선택에 가깝다. 2보 전진을 위한 1보 후퇴라는 설명이 나오는 이유다. 그 두 곳이 바로 중국과 미국이다. 폭스바겐그룹은 보도자료에서 플랫폼·전기전자 아키텍처·운전자 보조 시스템과 소프트웨어를 "서반구와 동반구 각각의 필요에 맞춰 체계적으로 맞춤화하고 있다"고 밝혔는데, 중국용 전략과 미국(리비안)용 전략을 별도로 짜겠다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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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폭스바겐 볼프스부르크 공장 생산라인 / 출처 Volkswagen Newsroom |
한때 열 대 중 네 대가 중국이었다
중국이 왜 이렇게 중요한 배팅 대상인지 이해하려면 먼저 과거 데이터를 봐야 한다. 확인해보니 2018년 폭스바겐그룹은 전 세계에서 1,083만 대를 팔았는데, 이 중 421만 대(38.9%)가 중국 판매였다. (출처: 폭스바겐그룹 판매 실적 자료)
2019년에도 전체 1,097만 4,600대 중 423만 3,600대(38.6%)가 중국에서 나왔다. 2020년엔 코로나로 전체 판매가 930만 대까지 줄었는데도 중국은 385만 대로 오히려 비중이 41.3%까지 올라갔다.
이 시기 폭스바겐이 전 세계에 파는 차 열 대 중 네 대는 중국에서 팔린 셈이다. 중국 시장 의존도가 얼마나 높았는지 보여주는 수치다.
5년 만에 반토막 난 중국 판매
문제는 이 구도가 5년 만에 완전히 뒤집혔다는 점이다. 지난해 폭스바겐그룹의 전 세계 판매량은 898만 4,000대, 이 중 중국은 269만 대 수준으로 비중이 29%까지 떨어졌다. 5년 전과 비교하면 154만 대가 사라진 셈인데, 이는 국내 자동차 시장 1년 치 판매량과 맞먹는 규모다.
판매 감소는 현재진행형이다. 올해 상반기 중국 판매는 전년 동기 대비 25.9% 더 줄었는데, 2010년 이후 16년 만에 가장 낮은 수치다. 중국 내수 승용차 시장 자체가 20% 넘게 침체된 영향도 있지만, 시장 평균보다 폭스바겐이 약 6%포인트 더 부진했다는 점은 부인하기 어렵다.
세상에서 제일 중요했던 시장에서 매년 수십만 대씩 판매가 줄어드는 상황, 이게 바로 폭스바겐이 중국에서 돌파구를 찾아야 했던 배경이다.
중국 전용으로 다시 만든 폭스바겐
VCTC 연구소, 승인 없이 개발한다
첫 번째 배팅은 안후이성 허페이에 세운 연구개발 자회사 폭스바겐 차이나 테크놀로지 컴퍼니(VCTC)다. 2023년 10억 유로로 시작해 2024년 4월 25억 유로를 추가 투자했다. 합치면 35억 유로, 우리 돈 약 5조 4,600억 원이 넘는다. (출처: 폭스바겐그룹 보도자료)
VCTC의 핵심은 독일 본사 승인 없이 중국에서 기획부터 개발까지 끝낸다는 점이다. 기존에는 중국 팀이 기획한 차량을 독일에 보고하고 승인받고, 부품 구매까지 독일 부서를 거치느라 의사결정 하나에 몇 주씩 걸렸다. VCTC는 이 과정을 없애 전체 개발 주기를 30% 단축하고, 특정 신차 개발 비용은 최대 50%까지 낮췄다.
CMP 플랫폼, 중국이 좋아하는 파워트레인만
VCTC가 개발한 중국 시장 전용 플랫폼이 CMP(콤팩트 메인 플랫폼)다. 순수 전기차부터 플러그인하이브리드, 주행거리 연장형 전기차(EREV)까지 모두 얹을 수 있다. 목표는 2030년까지 상하이폭스바겐이 내놓을 18개 모델 중 15개를 이 플랫폼으로 만드는 것이다.
CA 아키텍처와 카리존, 18개월 만의 역전
폭스바겐은 독일에서 자회사 카리아드를 통해 조널 아키텍처를 만들려다 실패하고 23조 원 넘게 썼다. 중국에서는 VCTC·카리아드 차이나·샤오펑이 손잡고 18개월 만에 '차이나 일렉트로닉 아키텍처(CEA)'를 완성했다. 자율주행은 카리아드와 중국 자율주행 반도체 기업 호라이즌 로보틱스의 합작사 '카리존'(지분 60대40)이 맡았다. 투자액은 24억 달러, 약 3조 7,000억 원이다.
카리존이 개발한 레벨2+ 시스템은 이미 ID.UNYX 시리즈에 탑재됐고, 이번 달 안에는 목적지만 입력하면 도심에서도 주행하는 레벨2++ 시스템이 업데이트될 예정이다. 지난 4월 베이징모터쇼에서는 이 성과들이 한꺼번에 쏟아져 하룻밤에 4개 모델이 월드 프리미어로 공개됐고, 올해만 중국에서 20종 넘는 신차가 나올 예정이다.
미국에선 리비안에게 손을 내밀다
중국 밖 시장에서는 중국에서 만든 소프트웨어나 아키텍처를 그대로 쓰기 어렵다. 더 까다로운 안전 검증과 법규를 통과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폭스바겐은 글로벌 시장용 배팅을 미국 전기차 업체 리비안에 걸었다.
배경에는 뼈아픈 실패가 있다. 폭스바겐은 자회사 카리아드로 소프트웨어를 자체 개발하려다 3년간 11조 원 넘는 영업손실을 냈고, 포르쉐 마칸 일렉트릭과 아우디 Q6 이트론 출시가 2년씩 밀리는 일까지 벌어졌다.
그래서 재작년 11월, 폭스바겐과 리비안은 합작사 'RV테크'(리비안 앤 폭스바겐 그룹 테크놀로지스, 지분 50대50)를 설립했다. 폭스바겐이 투입하기로 한 돈은 최대 58억 달러, 우리 돈 약 8조 원이다. 다만 한 번에 지급하는 게 아니라 전환사채 10억 달러, 지식재산권 라이선스와 지분 대금 13억 달러, 나머지 35억 달러는 단계별 목표 달성 시 지급하는 구조다. 카리아드에서 호되게 당한 뒤 만든 안전장치인 셈이다.
리비안에게서 사오는 건 조널 아키텍처다. 리비안은 2세대 R1S·R1T에 이미 이 구조를 적용해봤는데, 차 한 대에 들어가던 ECU를 17개에서 7개로 줄이고 전선 길이를 2.6km 줄였다. 그 결과 차량 무게는 20kg 가벼워지고 재료비는 20% 절감됐다. 미국 매체 인사이드EV에 따르면, 기존 방식으로는 카메라 하나 깨진 걸 고치는 데 와이어링 하네스 전체를 뽑아내고 대시보드까지 분해해야 해 정비소에 8개월이나 머문 사례도 있었다고 한다.
RV테크는 카리아드와 달리 진행이 빠르다. 두 회사 엔지니어가 처음 만난 지 12주 만에 굴러가는 데모카를 만들었고, 올해 3월에는 미국 애리조나와 스웨덴 아르비드샤우르에서 혹한기 테스트까지 마쳤다. 테스트 통과 후 폭스바겐은 리비안에 10억 달러를 추가 집행했다.
이 아키텍처가 처음 실제 양산차에 들어가는 건 내년 나올 초저가 전기차 ID.1(목표가 2만 유로, 약 3,000만 원대)이다. 가장 비싼 차가 아니라 가장 싼 차에 먼저 넣는 이유는 명확하다. 원가에 예민한 차일수록 전선과 ECU를 줄이는 효과가 크기 때문이다. 이 구조는 폭스바겐그룹의 차세대 통합 플랫폼 SSP로 자리 잡아, 앞으로 폭스바겐·아우디·포르쉐 전 브랜드에 확산될 예정이다.
아직 못 채운 마지막 퍼즐, 자율주행
RV테크가 만드는 건 차세대 전기전자 아키텍처와 차량 운영체제일 뿐, 자율주행 소프트웨어까지 포함된 건 아니다. 원래 폭스바겐은 2022년 보쉬와 자율주행 동맹 'ADA'를 만들어 레벨2~3 시스템을 개발하려 했고, 여기 2조 3,000억 원 넘게 투자했다.
하지만 두 달 전 이 동맹은 완전히 종료됐다. 내부 평가 결과 경쟁사 대비 성능이 한참 뒤떨어진다는 결론이 나왔기 때문이다. 고속도로 핸즈프리 수준의 레벨2+ 시스템은 개발됐고 이번 아우디 Q9과 내년 ID.1에 적용될 예정이지만, 그다음 단계를 이어갈 후속 파트너가 없는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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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폭스바겐 레벨4 자율주행자 'ID 버즈 AD' / 사진=폭스바겐 |
독일 매체 아우토모빌보호에 따르면 폭스바겐은 이달 안에 새 자율주행 파트너를 발표할 예정이다. 유력 후보는 두 곳이다. 하나는 이미 모빌아이 - ID.버즈 로보택시에 이미 기술을 공급 중이고, IQ6 칩과 자체 소프트웨어로 레벨2+ 시스템을 구현하는 가장 현실적인 방식이다. 다른 하나는 엔비디아가 투자한 영국 자율주행 스타트업 웨이브인데, 아직 검증된 실적이 상대적으로 부족하다는 평가다.
참고로 지난 2월 중국 매체 차이나이비포스트는 샤오펑 회장의 내부 메모를 인용해 폭스바겐이 샤오펑 차세대 자율주행 시스템의 첫 상업 파트너가 될 것이라는 보도를 냈다. 다만 이는 공식 발표된 내용은 아니어서, 폭스바겐과 샤오펑의 협력이 전기전자 아키텍처를 넘어 자율주행까지 확장될지는 조금 더 지켜봐야 한다.
반응은 엇갈린다, 배팅의 결말은
이 소식을 지켜본 시청자·독자들의 반응은 크게 세 갈래로 나뉜다.
첫째는 회의론이다. "기존엔 시장만 의존했는데 이제는 기술까지 의존한다"는 지적처럼, 중국 자본과 기술에 갈수록 깊이 엮이는 구조 자체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많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미국 정부가 살려놓은 GM이 이후에도 계속 내리막을 걸었던 사례, 혹은 필름 시장을 놓친 코닥·스마트폰 시대에 뒤처진 노키아에 빗대는 반응도 적지 않다. 특히 VCTC에서 만든 기술이 결국 중국 로컬 브랜드로 넘어가 폭스바겐과 중국차의 기술 격차가 사라질 것이라는 우려가 꾸준히 제기된다.
둘째는 "그래도 아직 죽지 않았다"는 시각이다. 감원과 동시에 향후 5년간 설비·연구개발에 210조 원을 투자하겠다고 밝힌 점, 그리고 카리아드가 3년을 끌고도 못 만든 걸 리비안과는 석 달 만에 데모카로 만들어낸 진행 속도를 근거로 든다. 하드웨어 중심 완성차 업체가 소프트웨어를 전부 자체 개발할 수 있다는 믿음 자체가 틀렸을 수 있다는 뼈아픈 학습 효과로 보는 시각이다.
셋째는 확장된 궁금증이다. "현대차·기아는 안전한가", "토요타 등 다른 레거시 업체는 어떤가" 같은 비교 요청이 이어진다. 국내 완성차업체들도 소프트웨어 정의 차량(SDV) 전환을 자체 개발과 외부 협력 중 어느 쪽으로 풀어갈지 지켜볼 대목이라는 의미다.
결국 이 두 배팅에서 잭팟이 터져야 폭스바겐이 살아난다. 지금 시점에서 확인할 수 있는 이정표는 세 가지다. 이번 달 발표될 자율주행 파트너, 이번 달 업데이트되는 중국 레벨2++ 시스템, 그리고 내년 공개될 ID.1의 실제 가격이다. 이 세 가지가 예정대로 나오는지부터 지켜보는 게 순서다.
자주 묻는 질문
Q. 폭스바겐 구조조정, 감원 자체가 목적인가요?
A. 아니다. 5만 명 추가 감원은 재원 마련용이고, 그렇게 확보한 돈을 포함해 향후 5년간 210조 원을 중국·미국 배팅과 설비·연구개발에 쓰겠다는 계획이 함께 발표됐다.
Q. 카리아드는 완전히 없어지나요?
A. 조직 자체가 해체된 건 아니다. 다만 독일 카리아드 단독으로 조널 아키텍처를 만들려던 시도는 사실상 실패로 끝났고, 핵심 개발 기능은 중국(카리아드 차이나+샤오펑)과 미국(리비안)으로 넘어가는 흐름이다. 보쉬와 맺었던 자율주행 동맹 ADA는 두 달 전 종료됐다.
Q. 자율주행 파트너는 언제, 어디로 확정되나요?
A. 독일 매체 아우토모빌보호 보도에 따르면 이달 안에 발표될 예정이다. 이미 협력 중인 모빌아이가 유력하고, 엔비디아가 투자한 웨이브도 후보로 거론된다.
Q. ID.1은 국내에도 출시되나요?
A. 목표가 2만 유로(약 3,000만 원대)인 초저가 전기차로 내년 유럽 출시가 우선이며, 국내 출시 여부와 시기는 아직 공식화되지 않았다.
Q. 중국 판매 회복 가능성은 있나요?
A. 이번 달부터 도심 구간까지 지원하는 레벨2++ 시스템이 업데이트되는데, 중국 소비자들이 필수 기능으로 여기는 항목인 만큼 이 업데이트 이후 판매 흐름을 확인해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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